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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당 신헌은 조선 후기의 무신이자 개항기 외교가로, 금위대장·훈련대장·진무사 등을 역임하였다. 다산 정약용茶山 丁若鏞과 추사 김정희秋史 金正喜의 문하에서 수학하였고, 추금 강위秋琴 姜瑋·환재 박규수瓛齋 朴珪壽 등 개화파 인물들과도 교유하였다. 1866년 병인양요 때에는 총융사摠戎使로 강화 염창鹽倉을 수비하였으며, 1876년 전권대관으로 강화도조약 체결에 참여하고 1882년 조미수호 조약 체결에도 관여하는 등 개항기 조선 외교의 주요 임무를 수행하였다.
그는 문장과 서화에도 능했으며, 특히 묵란을 잘 그린 것으로 알려져 있다. 초명은 신관호申觀浩로, 1868년 신헌으로 공식 개명하였다.
출품작은 신헌이 수묵으로 그린 8폭의 묵란도 병풍으로, 난초만을 간결하게 그린 폭과 괴석을 함께 배치한 석란도石蘭圖 형식의 폭이 함께 구성되어 있어, 폭마다 변화 있는 화면을 이룬다. 난엽은 먹의 농담과 필획의 강약을 달리하여 유연한 움직임을 살렸고, 괴석은 굵은 필획으로 처리하여 난잎의 부드러운 기운과 대비된다.
각 폭에는 '칠십구묵초당七十九墨艸堂', '위당威堂', '류경도인留耕道人', '향금당香琴堂', '난석도인蘭石道人', '국빈國賓' 등 신헌이 사용한 여러 호와 자字를 달리 써 서명하였으며, ‘수졸당守拙堂’ 백문방인과 ‘신헌사인申櫶私印’ 주문방인을 함께 찍었다. 이처럼 폭마다 서로 다른 별호를 사용한 점은 신헌의 서화가적 면모와 자의식을 보여준다.
신헌은 묵란에 능했다는 기록이 전하지만, 현재 전하는 작품은 화첩이나 소품이 많고 병풍 형식의 대작은 드문 편이다. 이 작품은 신헌 묵란의 필치와 구성 방식을 한자리에서 살펴볼 수 있는 예로서, 그의 서화 활동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자료라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