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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문신이자 대표적인 성리학자인 우암 송시열尤庵 宋時烈(1607-1689)이 주자朱子가 지은 「육선생화상찬六先生畫像贊」 가운데 염계 주돈이濂溪 周敦頤, 이천 정이伊川程頤, 횡거 장재橫渠 張載에 대한 찬문을 쓴 서예 작품이다.
송시열은 율곡 이이栗谷 李珥(1536-1584)와 사계 김장생沙溪 金長生(1548-1631)으로 이어지는 기호학파畿湖學派의 학통을 계승한 조선 후기의 대표적 유학자이다. 동춘당 송준길同春堂宋浚吉(1606-1672)과 함께 ‘양송兩宋’으로 불리며 학문과 정치 양면에서 큰 영향력을 지녔고, 주자학을 사상적 근거로 삼아예禮의 실천과 유교적 명분, 도리를 중시하는 학문을 전개하였다. 사후에는 문묘에 배향되며 조선 성리학의 정통을 상징하는 인물로 자리매김하였다.
송시열의 학문에서 주자는 가장 핵심적인 기준이었다. 그는 주자의 학설을 조선 성리학의 정통으로 인식하고, 경전 해석과 예론禮論, 의리론義理論 전반에서 주자의 사상을 깊이 탐구하였다. 본 작품이 주자의 「육선생화상찬」을 내용으로 삼고 있다는 점은 송시열의 이러한 학문적 지향을 잘 보여준다.
「육선생화상찬」은 주자가 북송 성리학의 주요 인물들을 기리며 지은 찬문이다. 출품작에는 그 가운데 성리학의 형성에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주돈이, 정이, 장재 세 인물에 대한 찬이 담겨 있다. 주돈이 찬은 도가 쇠하고 성인의 말씀이 멀어진 시대에 선각자가 지닌 의미를 말하며, 정이 찬은 법도와 기준, 군자의 완성된 인격을 비유적으로 드러낸다. 장재찬은 병가兵家와 불로佛老의 학문을 거쳐 유학의 도에 이른 과정을 언급하며, 실천적 수양의 의미를 강조한다. 이처럼 이 작품은 북송 성리학의 계보를 주자의 시각을 통해 기리는 내용을 담고 있어, 송시열이 중시한 주자학적 도통道統 의식과도 연결된다.
송시열의 서예는 석봉 한호石峯 韓濩(1543-1605)의 석봉체를 바탕으로 하면서도 안진경체顔眞卿體의 영향을 수용한 것으로 평가된다. 해서, 행서, 초서가 두루 전하며, 특히 비문碑文과 편액扁額, 대자서大字書에서 굵은 필획와 안정된 결구, 장중한 구성이 두드러진다. 송시열의 글씨는 글자의 골격을 굳게 세우고 획의 힘을 크게 드러내는 데 장점이 있으며, 문장 전체를 압도하는 중후한 기세가 특징이다.
출품작 역시 가로로 긴 화면에 큰 글씨로 쓴 행초서 작품으로, 송시열 대자서의 특징을 잘 보여준다.
글자들은 일정한 간격을 유지하면서도 필획의 연결과 운필에 속도감이 더해져 긴 화면이 단조롭게 보이지 않는다. 획의 굵기와 방향, 붓이 나아가는 힘이 그대로 드러나며, 행초서의 유연한 흐름 속에서도 글자의 골격은 단단하게 유지된다. 굵고 힘 있는 필획와 안정된 구성이 어우러져 송시열 글씨의 진수라 할 수 있는 중후하고 웅건한 기상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작품수록처 | 『2006·2007 동춘당·우암선생 탄생 400주년 기념-송준길·송시열』(예술의전당, 2007), pp.78-81
*염계 주돈이
道喪千載 聖遠言堙 不有先覺 孰開我人
書不盡言 圖不盡意 月風無邊 庭草交翠
천년동안 도가 없어졌으니, 성인은 멀고 말씀도 사라졌네.
선각자가 계시지 않는다면, 누가 우리를 깨우쳐 주리.
글은 말을 다 할 수 없고, 그림도 생각을 다 하지 못하네.
달빛과 바람은 가이 없는데, 뜨락의 풀이 서로 푸르구나.
*이천 정이
矩員規方 繩直準平 允矣君子 展也大成
布帛之文 菽粟之味 知德者稀 孰識其貴
그림쇠는 원, 곱자는 각을, 먹줄은 직선 수준기는 평평하네.
진실로 군자여서, 참으로 크게 이루셨네.
배와 비단 같은 문장에 콩과 좁쌀의 맛이지만
덕은 아는 사람 드무니, 누가 그 귀함을 알아주리.
*횡거 장재
早悅孫吳 晚逃佛老 勇撤皋比 一變至道
潛思力踐 玅契疾書 訂頑之訓 示我廣居
일찍이 손자孫子와 오자吳子를 좋아하다가, 만년에 불학佛學과 노장老莊으로 피했네.
용감하게 강단講壇을 떨치고, 한 번 변하여 도에 이르렀네.
정밀하게 생각하고 힘써 실천하며, 절묘하게 계합되면 급히 적었네.
정완訂頑의 훈계가 나에게 광거廣居를 보여주셨네.